KAMC 2026 묵상훈련 자료 2 과
김기천 목사님
2-1. 영성독서와 큐티의 차이
말씀 묵상은 성경 시대부터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도, 박해 속에 있던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말씀을 붙들고 살아갔습니다. 그들이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상황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 확신을 마음 깊이 새기는 말씀 묵상에서 나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 안에는 말씀을 묵상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QT(Quiet Time)**이고, 또 하나가 오늘 살펴보는 **영성독서(Lectio Divina)**입니다. 이 두 방법은 서로 경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서로 다른 접근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QT는 주어진 본문을 관찰**–해석–****적용**하는 구조를 가집니다. 본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의미를 오늘의 삶에 적용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QT를 통해 성경을 보는 눈을 키워왔고, 지금도 매우 유익한 도구입니다.
반면 영성독서는 질문의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영성독서는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가?”보다 먼저 “이 말씀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습니다.
영성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방법보다 태도입니다. 성경을 지식의 대상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전제됩니다.
그래서 영성독서에서 말하는 ‘영성’이란 특별한 체험이나 신비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깊이를 의미합니다.
2-2. 말씀묵상은 경건한 상상입니다**.**
아래 내용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성경본문 막 3:7-13절을 풀어 쓴 것입니다.
"오늘 따라 예수님이 모인 사람들을 향해 산으로 올라가자고 하신다(13절). 늦은 아침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계실 때에 사방팔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었다(8절). 사람들 가운데 특히 병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지려고 자꾸 밀어붙이니까 예수님은 점점 바다 쪽으로 밀리셨다. 바닷물이 발을 적실만큼 밀리자 하는 수 없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작은 배를 준비시켰다(9절).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다는 소문들이 이미 온 동네에 퍼져 있었다(8절).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동네에 귀신 들린 사람이 있으면 붙잡아 예수님께 데리고 오기도 했다. 물론 귀신들린 사람이 자기 발로 예수님을 찾아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온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기만하면 꺼꾸러져 소리를 질러댔다(11절).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부르짖는 소리가 그의 목소리가 아님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귀신의 소리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귀신의 소리를 듣자마자 다가가셔서 '조용하라'며 꾸짖으셨다(12절). 이유는 그 귀신이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11절). 예수님은 배 위에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때로는 내려와 병을 고치시기도하고 귀신을 쫓아내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을 갈릴리 바닷가에서 보내신 주님은 갑자기 사람들을 향하여 산으로 올라가시겠다고 하신 것이다(13절)."
영성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경건한 상상’으로, 문자를 형상으로 바꾸어 사건을 눈앞에 떠올리는 능력입니다 . 이렇게 형상화하는 말씀묵상(Meditation)**을 통해 기록된 말씀 속 진리와 풍성한 의미를 캐내지만, 본문과 신앙에서 벗어난 상상은 망상이 되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경하는 태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
2-3. 열두 제자 임명 묵상
예수님께서 산으로 올라가시자, 특히 걷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는 이들은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어 속으로 실망하지만,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오면 꼭 옷자락이라도 붙잡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산 정상 가까이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넓은 곳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바위에 앉아 천천히 올라오는 무리를 말없이 바라보시며 큰 결정을 품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예수님께서는 “내 제자가 될 자들을 부르리라”라고 선언하시며, 앞으로 함께 생활하며 여러 동네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낼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먼저 시몬, 야고보, 요한, 안드레처럼 이미 잘 알려진 이들의 이름이 불릴 때에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과 심지어 가룟 유다까지 호명될 때에는 사람들은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숨을 죽입니다.
이름을 들은 이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와, 열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제자로서 당당히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산”**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며 그분의 결정을 지켜보는 실제 장면으로 형상화되어야 하며, 영성독서에서의 말씀묵상은 바로 이렇게 문자 뒤에 있는 살아 있는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뜻합니다.
2-4. 탕자의 비유 묵상
“아버지, 제 몫의 재산을 미리 주십시오**.”**라는 둘째 아들의 말은 어느 아버지에게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입니다. 신중하고 순종적인 첫째와 달리 고집이 세고 끝을 보는 성격의 둘째를 잘 알고 있던 아버지는, 거절하면 아들이 빈손으로 집을 나가 평생 원망 속에 살까 염려하시고, 준다면 분명 곧 탕진하고 고생 끝에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깊이 고민하신 끝에, 거절하여 아들을 잃기보다는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가 결국 회개하고 돌아올 길을 열어 두는 쪽을 선택하십니다. 둘째는 분명 집을 떠나 방탕하게 재산을 허비하겠지만, 그 끝에서 비로소 아버지 집을 기억하고 돌아올 것이라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묵상은 영성독서에서 말씀을 ‘형상화’한 예로, 여기에서 멈추면 그저 잘 만든 소설에 머물 뿐이기에 반드시 두 가지를 더 해야 합니다. 첫째, 형상화된 장면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야 하고**,** 둘째**,**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탕자의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으며, 철없는 둘째 아들의 모습에서도 오늘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묵상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거울 삼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를 진지하게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2-5. 시편 23****편 묵상**(1)**
성경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에, 말씀 앞에서 먼저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이 회개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성경도 글이기 때문에 단어와 문법의 법칙을 이해할수록 본문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말씀묵상은 이 법칙 위에서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에서 중심은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이며, 미래 시제를 통해 지금 다윗에게 실제로는 부족함이 있지만 곧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드러납니다.
영성독서를 하는 사람은 이 구절을 읽으며 지금 자신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부족함이 무엇인지 비추어 보고, 다윗처럼 그 부족함을 이길 믿음과 확신이 자신에게도 있는지 정직하게 돌아보도록 초대받습니다.
2-6. 시편 23****편 묵상**(2)**
하나의 단어도 문장 속에서 다른 단어들과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의미가 제한되고 분명해지듯, 말씀묵상에서는 문법뿐 아니라 단어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종속절 안에서 “여호와, 나, 목자**”**라는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며, 여호와는 다윗의 하나님이요, 다윗의 부족함을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다윗은 가장 힘들고 부족한 시기의 **‘양’**으로 드러납니다.
**“나의 목자”**라는 표현 속에서 다윗은 지치고 피곤한 양의 모습으로, 여호와는 그런 양을 돌보는 목자로 나타나며,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 다윗을 끝까지 돌보아 주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라는 고백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한 구절 안에 담겨 있다고 정리합니다.
2-7. 시편 23****편 묵상**(3)**
다윗은 여호와와 자신을 목자와 양의 관계로 묵상하면서, 특히 자신을 몹시 지치고 부족한 양의 모습으로 바라봅니다 .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라는 말씀 안에는, 양에게 꼭 필요한 기름지고 풍성한 풀을 아는 목자가, 영양이 부족한 양 한 마리를 정확히 그곳으로 데려가 돌보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
여기서 핵심은 “인도하시며”가 아니라 **“누이시며”**라는 동사에 있습니다 . 양이 스스로 걸어가 눕는 것이 아니라, 너무 지쳐 걷지 못하기 때문에 목자가 품에 안아 푸른 초장에까지 데려가 조심스럽게 눕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 다윗은 바로 이렇게 스스로 설 힘도 없는 양과 같은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런 자신을 안고 가장 좋은 자리까지 데려가 쉬게 하시는 여호와를 목자로 고백합니다 .
2-8. 시편 23****편 묵상**(4)**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는 말씀은, 앞 구절과의 관계 속에서 볼 때 목자 되신 여호와께서 양인 다윗을 어디로, 어떤 마음으로 이끄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 인도하는 이는 “그”(목자)이고, 인도받는 이는 “나”(양)이며, 목자는 길을 알고 앞서 가고, 양은 한 치 앞도 알지 못한 채 뒤에서 따르는 존재입니다 .
목자는 양을 물이 없는 광야에서, 풍랑 이는 위험한 물가가 아니라 “쉴만한” 잔잔한 물가로 이끄십니다 . 양은 푸른 초장에서 회복되어 이제는 목자를 따라 자기 발로 걸을 힘을 얻었고, 2절 안에는 지친 양을 품에 안아 회복시키시는 목자의 모습과, 회복된 양을 앞서 인도하시는 두 가지 사랑의 모습이 함께 드러납니다 .
2-9. 시편 23****편 묵상**(5)**
1절에서 다윗은 현실적으로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 되신 여호와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선포# KAMC 2026 묵상훈련 자료 2 과
<% tp.file.cursor() %>했습니다 . 2절로 넘어가면서 이 믿음은 실제 경험이 되어, 지친 양이 목자의 품과 손길, 눈빛과 음성, 웃음과 인도하심 속에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경험하는 생생한 이야기로 펼쳐집니다 .
이렇게 미래형이던 소망이 현재의 현실이 되는 것을, 히브리서의 표현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다윗은 말씀 속에서 자신을 양의 모습으로 겸손히 내려놓고, 목자의 사랑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 영성독서의 목적이라 고백하며, 결국 말씀 안에서 지금 여기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
2-10. 시편 23****편 묵상**(6)**
시편 23편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는 고백은, 단어들 사이의 관계를 깊이 묵상할 때 의미가 선명해집니다 . **“소생시키다”**는 회복시키는 행위를 말하며, 회복의 대상은 다윗의 영혼이고, 회복의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
이는 2절에서 스스로 걷지 못해 품에 안겨야 했던 양의 모습과 이어지며, 이전에 다윗의 영혼이 약해져 있던 상태를 전제합니다 . 하나님은 다윗이 필요로 했던 수많은 외적 조건보다 먼저, 가장 중요한 영역인 **“영혼”**을 회복시키셨고, 이는 창세기 2장 7절 **“생령”**과 같은 히브리어 **“네페쉬”**의 회복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
영성독서를 통해 본문을 깊이 묵상할수록**,** 한 문장 안의 단어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문장과 문장이 서로의 의미를 보완하며 더 풍성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